디자인과 인간심리
왜?, 왜 전지전능(Almighty)한 신이 숱한 인간들을 고통과 신음 속에 버려두는가? 왜 신을 저버리는 반역자가 생기고, 세상은 또한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을까? 왜 신은 자유의지의 끝을 알면서도 그들을 방치하는가? 만일 신이 죄악을 만들었다면 그 죄는 인간의 것이 아니라 신의 것이며, 만약 죄악이 신의 뜻이 아니라 어떤 다른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신은 전능하지 않은 것이다.

왜?, 왜 전지전능(Almighty)한 신이 숱한 인간들을 고통과 신음 속에 버려두는가? 왜 신을 저버리는 반역자가 생기고, 세상은 또한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을까? 왜 신은 자유의지의 끝을 알면서도 그들을 방치하는가? 만일 신이 죄악을 만들었다면 그 죄는 인간의 것이 아니라 신의 것이며, 만약 죄악이 신의 뜻이 아니라 어떤 다른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신은 전능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죄를 범하는 인간들에 대한 신의 딜레마라고 ‘사람의 아들’의 작가 이문열은 소설 속 주인공 민요섭의 눈을 통해 이야기한다.
20세기 기계 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디자이너들은 신이 인간을 창조했던 것처럼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일상 생활의 수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창조하는 전지전능한 권한을 위임 받았다. 하지만 우리는 수시로 문에 부딪치고 수도 꼭지를 어떻게 트는지 몰라 당황해하며 때때로 비행기를 추락시켜 많은 희생자를 만들어낸다. 그러면서도 오류나 사고의 책임을 자신의 무지나 실수로 돌리곤 한다.
하지만 그 책임은 대부분 사용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 고안되거나 디자인된 물건에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그 설계자이자 창조자인 디자이너에게 있다는 것이 도널드 노먼(Donald A. Norman)의 주장이다.
노먼은 그의 저서 The Design of Everyday Things(1988, 초판의 제목은 The Psychology of Everyday Things였으며, 국내에서는 디자인과 인간심리로 번역 출간되었음)에서 “오류는 인간적이다” 라는 역설적인 말과 함께 오류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이를 해결하고 정상적인 사용이 가능하게끔 만드는 것이 디자인의 핵심이라고 이야기한다.
일상의 어디에서든 나쁜 디자인의 예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다. 전자식 전화기 시스템(오늘날의 휴대폰들을 포함하여)들은 마이크로 칩 덕분에 보다 많은 일들을 가능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화기의 어떤 면이 잘못 디자인된 것일까? 대부분의 경우, 조작 가능한 기능의 수가 통제기(제어 버튼)의 수보다 많을 때 사용상의 어려움이 발생한다. 통제기가 하나의 기능을 수행한다 하더라도 그 수가 늘어나면 기억하기도 사용하기도 어려워진다.
하물며 하나의 통제기가 두 개 이상의 기능을 가질 때에는 사용자들이 해야 할 행위와 결과 간에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할 수 없기 때문에 곤혹스러워진다. 통제기의 수와 수행하는 기능의 수가 같으면 각각의 기능은 하나의 통제기에 대응(mapping)하기 때문에 그 기능들은 가시적(visible)인 것이 되어 사용자에게 기능과 관련된 적절한 내용을 전달해줄 수 있다.
시스템의 조작이 눈에 보이지 않는 오늘날의 인공물들에 있어서 시스템의 작용에 관한 가시성의 제공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가시성(visibility)이란 의도된 행위와 실제의 조작 사이의 대응관계를 말하며, 통제장치와 조작간의 관계성은 사용자에게 명백하게 판독되어야 한다. 임의적 대응(음성 메시지를 듣기 위해 왜 쪻89를 눌러야 하는가? 왜 1도 아니고 100도 아닌 89인가?)이 아닌 자연스러운 대응관계를 결정하는 것은 디자이너에게 있어서 어렵지만 그만큼 핵심적인 문제이다. 또한 사용자의 조작행위들은 즉각적이고 가시적으로 피드백 되어 행위의 인과관계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출간된 지 20년이나 된 책을 새삼 소개하고자 하는 이유는 최근 들어 길을 잃고 자주 헤매는 나와 내 주변의 이야기들이 떠올라서이다. 뇌의 구조가 하나의 독립된 공간이 연속적으로 배열되어있는 벌집과 같고, 기억이란 것이 그 안에 담겨있다가 일정 시간이 흐른 뒤에 사라져버리는 꿀과 같은 존재라면(물론 장기 기억 (long term memory도 있지만), 아무래도 최근의 우리 뇌는 달콤하고 끈적한 기억들은 사라진 채 말라비틀어진 틀만 남아있는 느낌이다. 기억의 속성을 꿀에 비유하는 것도 황당한 일이겠지만, 끈끈하다 못해 검질겨서 끝내 사라지지 않을 것 같던 기억의 파편들이 사라져버리는 일련의 사건은 더욱 놀랍다.
이 같은 증상은 특히나 컴퓨터 앞에 앉아서 웹이라는 망망대해를 서핑하는 서퍼가 되었을 때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 무언가 뚜렷한 목표아래에서 검색을 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분류하고 기억하고 하는 논리적인 과정들이 어느 순간 붕괴되어 처음의 시작과는 전혀 다른 현재에 와있는 경험들을 여러분들은 하고 있지 않은가.
지난 수년간을 돌이켜보면 헐리우드 호러 영화가 공포의 고조를 위해 서서히 깔아놓는 복선의 음율처럼 아주 서서히 그리고 아주 낮게 다가와 우리의 형질을 변화시키고 논리적 구조를 왜곡시켜온 무언가의 실체가 하이퍼텍스트라는 심증이 굳는다.
하이퍼텍스트는 논리적인 설계과정을 통해 가장 비논리적인 경험구조를 구축한다. 정보의 확장가능성을 제시하고 인간의 논리구조를 모방한 혁신성을 내포하지만 인간의 불완전성에 기인하여 가장 비효율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모순성을 극복하고자 할 때 디자이너와 같은 정보설계자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것이다. 디자이너는 사용자가 겪을 수 있는 오류들을 예측하고 그것을 방지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노먼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오류들은 그 대상이 제품이든 환경이든 혹은 웹이든 시스템이든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고, 마찬가지로 그 오류가 무엇이든 간에 디자이너가 사전에 그 오류를 인식한다면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있는 것이다.
노먼은 책의 도입부에서 우리가 일상에서 흔하게 접하게 되는 생활 용품(everyday things) 사용상의 어려움에 대해 이해하기 쉬운 예들을 들어가며 그 잘못이 디자이너에게 있음을 주장하고 마지막 장에서는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을 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사항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사용하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용자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어디에 흥미를 느끼고 있는지를 바탕으로 첫째,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행동이 가능한지 알기 쉽게 할 것. 둘째, 시스템의 개념적 모형, 대안적 행동들 그리고 행동의 결과를 포함하여 모든 일(things)을 가시적이게 할 것. 셋째, 시스템의 현재 상태를 평가하기 쉽게 할 것. 넷째, 하고자 하는 것(의도)과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행동 간의, 행동과 그 결과 간의 그리고 가시적인 정보와 시스템 상태의 해석 간에 자연스런 대응관계를 유지할 것.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사용자가 무엇을 해야 할 지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잘 알 수 있게 하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사용하기 위한 대상이 아니라 욕망의 대상들에 둘러 쌓여있다. 일상적인 일이 어려운 것은 그것에 내재된 복잡성 때문이 아니라 임의적인 관계와 임의적인 대응을 학습해야 하기 때문이다.
좋은 디자인이란 사용자들에게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한 가지 일만이 보이도록 관계를 조직화하는 것이다. 사용자가 길을 잃지 않도록 목표에 도달하는 가장 쉬운 길을 보여주는 것은 좋은 디자인의 첫걸음이다.
기억력에 문제가 생겼다거나 비논리적이라며 자신을 탓하는 일은 더 이상 벌어지지 않을 것이고, 자유의지 운운하며 모든 탓을 디자이너에게 돌리는 일도 사라지지 않을까.
저자인 도널드 노먼은 인간공학, 심리학 및 디자인 연구분야의 세계적 석학이며 노스웨스턴 대학의 컴퓨터과학과 심리학과 교수이다. 인간 중심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강조하는 컨설팅 회사인 닐슨 노먼 그룹의 공동설립자이기도 한 그의 저서로는 ‘생각있는 디자인(Things That Makes Us Smart)’, ‘이모셔널 디자인(Emotional Design)’, ‘보이지 않는 컴퓨터(The Invisible Computer)’ 등이 있으며, 웹 사이트는 www.jnd.org 이다. 현재 The Design of Future Things를 집필 중이다.
글. 박승호 이화여대 디지털 멀티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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