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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s 포스팅 - 포스터 디자인 속의 환경보호
퀸스향  |  2010.03.05 21:31:26

환경보호문제를 쉽게 보여주는 포스터
 





그래픽디자인의 생명은 시각을 통해 이루어지는 강렬하고 직접적인 호소력에 있다. 디자인의 광대한 테두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환경오염에 대한 문제 해결에 있어 구체적인 실천은 말할 것도 없고, 바탕에 흐르는 의식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정확한 인식을 지니지 않으면 어떠한 노력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환경보호를 주제로 한 포스터의 중요성은 시각적인 측면에서 더욱 커진다고 할 수 있다. 포스터 디자인은 그래픽 영역 중에서도 오랜 역사를 지닌 형식이며 인간의 원초적 감각에 호소한다. 오늘날에는 표현양식의 다양한 전개로 보다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뒤늦게 환경에 대한 인식을 높이려는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단계는 아직도 부족하다. 포스터 디자인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여기에 소개되는 포스터들은 환경을 주제로 삼고 있지만 미적인 측면에서도 뛰어나 포스터 디자인의 전형을 보여준다.
 
단순한 명령과 교훈을 전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보는 대로 느끼게'하는 것이다. 동화의 단순성을 빌어 표현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면서도 직설적이고 명쾌한 전달방식을 취하고 있다. 현실감을 뛰어 넘는 충격효과나 나무, 나뭇잎, 종이컵, 알루미늄 캔 등을 소재로 구체성을 띠는 등 다양하게 표출되는 것이다. 환경에로의 의지를 보여주는 '포스터 속의 환경보호'는 분명 우리의 몫이다.
 
지구의 허파가 죽어가는 것을 시사하고 있는 환경 포스터디자인

가죽패션의 경각심을 시사해 주는 포스터

정보화 시대에 따른 세계의 흐름에 뒤처지면 안된다. 구한말 대원군이 펼쳤던 쇄국정책에 대한 논란은 엇갈리고 있지만, 문을 닫음으로 해서 파생된 근대사회에서의 이탈을 부인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문을 닫는다는 것은 그처럼 위태로운 모험이다.
 
유럽국가들의 쓰레기 분류는 너무하다 싶을 만큼 철저하다. 우리처럼 대충 구별해서 수거하는 것이 아니다. 도심 어디서나 분리수거함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우선 틀리고, 특별한 분리 대상 쓰레기일 경우에는 사람들이 자주 오가는 곳에 설치하는 등 세심한 배려가 되어 있다. 또 옷핀, 주사기, 면도날 등 날카롭고 위험한 물건을 따로 수거하는 치밀함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쓰레기함의 아름다움에도 신경을 씀으로써 미적인 면에서도 소홀함이 없다. 우리의 경우, 쓰레기통 주변은 쓰레기 속보다 더러울 만큼 관리가 잘 안되어 있다.
 
우리의 환경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방법론을 외국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체성이라는 미명 아래 무조건 배척을 일삼는 것은 분명 제2의 쇄국주의에 다름아니다. 현대 사회의 쇄국주의는 후퇴가 아니라 자멸을 초래할 것이 불보듯 뻔하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은, 이러한 환경오염에 대한 방지노력과 지구를 살려야 한다는 선진 외국들 노력이 '또 다른 전쟁'을 기반으로 삼는다는 사실이다. 흔히 '녹색전쟁'으로 불리우는 공세가 바로 그것이다. 지구를 구해야 한다는 대명제를 무기로 그들은 '팔것'을 들이밀고 있다. 실상 오늘날의 상태에 이르기까지 근본적인 원인제공을 한 장본인은 선진국이다. 그러나 과거를 들먹이는 것으로 그들을 설득한다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
 
  
일회용 줄이기 실천 포스터
 
 
 
 
 
지구환경의 그릇된 사용은 현세대는 물론이고
후손들에게도 치명적인 위협임을 보여주는  포스터
 
동물진화에서 멸종으로 변하는 것을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수년전 브라질의 리오 데 자네이로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지구환경대책회의에서 의제 21, 즉 <아젠다 21>로 불리오는 구체적인 행동강령을 채택했다. 1972년 스웨덴에서 제2차 세계환경회의가 열렸을 때만 해도 '단순한 미래의 걱정'이었던 것이 지금은 생명을 위협하는 지경에 다다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이 아니라도 선진국에서는 그들의 이익에 기초한 각종 규제들을 정해 놓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엔환경회의에 따른 한국위원회가 조직되어 많은 홍보를 하고 있다. 바람직한 일임에 틀림없으면서도 고개를 가로젓게 되는 것은 '일회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굽힐 줄 모르는 한국인의 의지는 자꾸 일회성으로 바뀌는것 같아 안타깝다.
 
그러한 이유가 생활양식의 변화로부터 비롯된다고 할 때 디자이너의 책임이 뒤따르는 것이다. 경제적인 소비 차원에서가 아니라 정신을 소모한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무엇이든 일회용으로 디자인 되어 야기된 결과이다. 단순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환쟁이'에서 이제는 환경을 위해 앞장서는 '환경쟁이'가 되어야 할 때이다.
 
 
 
 
"숲은 이렇게 잔치에 참여한 모든 구성원들이 꾸며가는 축제의 장이다.
누가 억지로 꾸미려고 하거나 다듬지 않았는데도,
숲은 그 속에서 숨쉬는 친구들에게 딱 맞는 환경을 제공한다." - 남효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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