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신발포스터와 1920년대 섬유 포스터
우리는 디자인이라는 용어가 우리 생활 전반에 걸쳐 쉽게 사용되는 일상용어로 변화되었음을 볼 수 있다. 현재 디자인은 작게는 초등학교 아동들의 문구류에서부터 크게는 자동차 또는 집안의 실내공간에까지 널리 적용되고 있다. 또한, 디자인은 현대자본주의 경제체제하에서는 국가경제에까지 깊이 연관되고 있음을 언론지상에 매일같이 나오는 기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렇게 디자인이 보편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디자인이라는 의미는 제품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요소-가격, 성능, 외관 등-들의 총체적이고 바람직한 해결책으로서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모양이나 색채 또는 무늬 등을 가늠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디자인 관련 교육은 1946년 서울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에 신설된 도안과와 1958년 홍익대학교 미술학부에 신설된 공예과설치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당시 디자인개념은 매우 초기 단계로, 총체적인 개념이 아닌 극히 지엽적이고 소극적인 의미의 도안, 의장, 응용미술이라는 국한된 개념이었다. 또한 당시 우리나라 산업구조도 대단히 취약한 상태였으므로, 사회에서 디자인을 수용할 만한 상황이 아닌 까닭에 대부분의 교육은 응용미술가나 공예가를 양성하는 수준의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960년대의 관에 의해 주도된 경제개발과 함께 해외 수출의 초기상태에서 디자인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1965년에 한국디자인포장센터가 설립되었으며, 1966년 상공부 주최 대한민국산업디자인전에 상업미술부, 공예미술부, 공업미술부가 생김으로써 디자인에 관한 본격적인 개념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에 맞추어 국내 몇몇 대학의 응용미술과에서 이에 상응하는 교육이 점차 싹트기 시작했으나 디자인에 대한 개념이 확실치 않아 체계화된 교과목에 의한 교육이라기보다는 공예적인 성격이 강한 상태에 대량생산을 가미한 정도의 초보적인 단계의 디자인교육이 실시되었다. 또한 이때는 디자인을 가르칠 수 있는 교육자도 드물어 대개는 공예가나 응용미술가의 의식을 가진 교육자에 의해 교육되었고, 학생들 역시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많지 않아 대개는 졸업후 작가가 되겠다는 예술적인 열의를 갖고 있었다.
따라서 이때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디자인에 대한 의미가 싹트기는 했으나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 그리고 제반여건-교육적인 분위기나 사회적인 조건 등-이 전혀 성숙되지 못한 시기였으므로, 디자인 발아기 혹은 태동기라고 할 수 있다.
1970년대는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산업화로 돌입하는 시기였으므로 디자인 역시 이와 상응하는 발전을 보였다. 사회적으로는 디자인이 어느 정도 이해되기 시작하였고, 국내의 대기업에서는 부분적이지만 디자이너를 채용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하에 '60년대의 응용미술 범주에서 세분화된 디자인 전문단체-한국시각디자인협회, 한국인더스트리얼디자이너협회, 한국공예가협회, 한국디자이너협회 등-가 생기기 시작하여 그들 나름대로 디자인 진흥 내지는 계몽이라는 대외적인 활동을 펼쳐나갔다.
교육의 장에서는 각 학교마다 디자인 계열학과가 계속적으로 대폭 신설되었다. 특히 '70년대에 수적으로 팽창한 전문대학에는 '미술(디자인)수출'이라는 정부의 정책에 힘입어 디자인 관련학과가 없는 대학이 없을 정도로 증가하였다. 부분적으로는 대학원에 진학하여 학문의 심도를 더하려는 사람들도 등장했다.
그러나 교과목의 경우는 아직까지 미술적 개념에 바탕을 둔 교과목이 대부분이었으며, 해당과목도 주로 실기 위주의 작품 제작을 우선시하는 등 구체적인 디자인 교육 방향이 설정되지 못했다. 따라서 이 시기는 디자인의 계몽의 시기, 양적 확대의 시기, 개론의 시기 또는 자체 진흥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와 90년대는 '70년대의 디자인 개론의 시대에 심도를 더하기 위한 각료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때는 해외유학의 폭이 넒어짐에 따라 많은 수의 사람들이 해외로 진출해 새로운 분야를 접하게 됨에 따라 디자인뿐 아니라 이에 연관된 학문들에 세부적인 관심을 갖게 되는 시기였다. 또한 사회적으로는 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을 전후하여 해외의 각종 정보와 문화가 유입되었고, 국내시장의 개방과 해외여행의 자유화 등을 통하여 디자인에 대한 의식과 중요성이 정착되는 시기였다.
2000년대는 학교 교육 역시 양적인 팽창기를 지나 보다 조직적인 개편을 가져왔고, 학과도 세분화하여 설치함으로써 본격적인 디자인교육을 위한 체계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아울러 종전의 미술과 관련하여 디자인 계열학과가 미술대학 내에 설치되어 있던 것이 멀티학과로 분리되었다. 그리하여 디자인을 블랙박스(Black Box)의 개념으로 보던 관점이, 해외 정보의 신속한 교류와 젊은 유학파들에 의해 크리스탈 박스(Crystal Box)의 개념으로 변화되었다. 이 시기야말로 디자인의 학문적 연구가 논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시점이라 할 수 있으므로, 이 시기를 양적인 발전과 아울러 각론에로의 관심기, 외적 체계의 정비기 또는 디자인을 학문으로 인식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의 디자인교육은 디자인을 위한 교육(Education for Design)이 아니라 감성적인 실기작업에 의한 디자인을 통한 교육(Education through Design Work)이었으며, 이로 인해 주로 커뮤니케이션과 포메이션에 치중하는 감성위주의 교육이 주가 되어 왔다. 가르치는 교육자들 역시 주로 미술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으며, 많은 입시생들도 미술과 디자인을 동일시하는 그릇된 통념을 갖고 있었고, 디자인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 또한 미술작품과 같은 범주로 생각하는 편협된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학생들은 자연히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근거가 빈약한 미적인 표현양식에만 관심을 갖게 됨으로써 졸업 후 조직내 디자이너로서 활동할 때 자신의 행위 결과에 논리적인 타당성을 명확하게 추출하지 못하는 편향된 교육이 이루어져 왔다. 감성은 반복에 의해 어느 정도까지 훈련될 수 있으나 교육되어질 내용은 아니며, 그것이 설령 훈련에 의해 숙련된다 하더라도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연속 행위일 뿐이지 실제의 창조력은 아니다.
대학에서의 디자인 교육은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자질과 능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학생들은 교육을 통하여 수많은 조사와 분석을 통한 종합과 함께 이를 위한 실험과 연구를 통해 시행착오를 경험하면서 성장해가야 한다. 학습에서는 완성된 결과물의 제시가 아니라 시행착오를 통하여 얻어지는 경험이 중요하다.
교육의 참다운 의미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 관련된 일련의 내용들이 최종적으로 가치있는 연구물이 되며, 결국 이것들이 쌓여서 그 해당 분야의 바탕과 기초를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디자인을 막연히 감성적인 결과라고 생각하는 의식을 가능한 빨리 불식시켜야 하며, 아울러 디자인은 대단히 학제적인 분야라는 점을 고려하여 디자인 교육의 기초분야에관한 철저한 연구와 함께 체계화된 학문적 어프로치를 강조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산업구조는 그간의 저임금에 의한 노동집약적인 산업에서 기술집약적이면서도 고품질을 갖는 고부가치제품을 창출해야만 한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미래사회의 절실한 요구를 단기간 내에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소프트웨어임에 대해서는 두말할 나위도 없으며, 이 주역을 양성하는 교육에서부터 자기 혁신을 갖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미래의 디자인 교육을 위해서는 지금까지 잘 이루어놓은 예술적인 장인의식(?)과 함께 이제는 보다 심도있는 발전을 위한 이념추구의 방향을 기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현실에 바탕을 두면서 경직된 틀을 벗어나 유연성을 가지고 종합학문으로서의 기본인 체계화와 이를 입체적으로 연계시킬 수 있는 종합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아울러 디자인은 인간을 위한 것이기에, 이를 행하는 디자이너의 인간성에 대한 바람직하고 온건한 교육도 병행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