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컴퓨터 마우스, 1968
엥겔바트가 개발했을 때는 비록 기본 골격이야 지금과 비슷했지만
나무로 된 투박하고 네모난 생김새였다.
서양 디자인을 공부할려면 먼저 미술사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보다 경제, 사회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디자인의 본질에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으며, 동양과 서양이라는 이분법 위에서 접근하기 보다는 근대 산업기술에 대한 인간의 지혜가 서양에서 발달하여 전세계로 파급되었고, 이러한 산업사회의 시작과 동시에 디자인의 문제가 생활의 문제로 제기되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섬유제품을 비롯한 초기 산업시대의 수출제품에 있어서 미적 취향이 판매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조사분석에 근거하여 미술적인 미적 요인을 산업제품에 응용해야 한다는 산업미술의 개념이 형성되었다.
미술적 요인을 산업에 응용해야겠다는 초기 산업시대의 통념은 곧 장식을 산업제품에 응용하는 모순을 낳았고, 따라서 산업 생산 자체에서 타당하게 형성되는 기능적이고 구조적인 특성이 우리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는 추상적 미적 특성에 대해서는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이때문에 현대 산업화한 나라에서 생산되어 생활에 사용되고 있는 대부분의 제품은 모두 이와 같이 장식이 없는 조형적인 특성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음을 우리는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따라서 디자인의 창조활동이란 이와 같이 조형적 특성을 규명, 창안해서 여러 가지 목적에 맞도록 그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인식하게 된 것이다. 19세기를 디자인에 있어서 이념의 시대라고 말한다면 21세기는 디자인 방법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19세기는 소규모의 생산업체와 전통적인 수공예 생산방법이 지배적이었고, 디자인에 대해서도 무늬, 장식 이상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소규모의 공예산업과 장인 중심의 독립된 공예가에 의해서 전통적인 형태가 고수, 유지되었기에 양식에 대한 규범을 과거의 전통, 과거의 문화에서 찾으려 했으며, 따라서 양식과 기능 사이에 심한 갈등이 있었다.
한편 새로이 대두된 산업생산업자에 의한 제품생산에 대해 품질면에서 인정하지 않는 러스킨, 모리스 등 산업발달에 대한 비관론자들에 의해서 낭만주의적 반항운동, 품질회복운동이 나타났다. 미적, 윤리적 가치를 강조한 이 운동은 결과적으로 복고주의의 운동이 되었고, 반산업주의 운동이 되었으며, 값비싼 수공예 운동이 되어 산업에 영향을 주지 못한 소수자를 위한 운동이 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는 예술민주화 등 미적 이상주의자들의 디자인에 대한 사상이 확산 되었다.
1765 1883
인체공학적 설계와 미적 감각, 기술력을 두루 갖춰야 하는 의자 디자인은
디자이너들의 솜씨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경연장이기도 하다.
개미의자, 1952
개미처럼 허리가 날씬한 아르네 야콥센의 개미의자이다.
식당부터 거실까지 장소를 불문하고 어울릴 뿐만 아니라 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멋스러운,
그야말로 시공을 초월하는 역작이다.
타일로 만든 자동차, 2006
1994년부터 건축가, 디자이너, 아티스트들과 모자이크를 주제로 한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마르셀이 디자인한 이 자동차는 유리공법으로 만든 글라스 모자이크 타일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지포의 원조, 1932
코카콜라 병과 리바이스 청바지와 함께 미국의 아이콘이 된 지포 라이터.
제2차 세계대전 준 미군의 '공식'라이터가 되면서, 수많은 무용담과 함께 확실한 자리를 굳혔다.
20세기 초, 디자인계는 미와 기능에 대한 문제를 서로 조화시키려는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19세기의 반산업주의, 반산업문명적 자세가 변화하기 시작했고, 미적이고 사회적인 이상을 성취하기 위해서 미적 형태와 기능에 대해서 다시 정의하는 운동이 생기게 되었으며, 장식보다는 기능과 구조적인 요소를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생겼다.
한편 근대 디자인 운동은 지도적인 인물인 반 드 벨드가 브럿셀에 공방을 개설, '대량생산'의 개념을 강조 실천했지만 이때까지(1898)는 '반복적인 공예의 생산'에 지나지 않았다.
1900년대 초 1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유럽 열강의 세력판도와 국제무역환경의 변화 등은 산업생산과 디자인에 있어서 '합리화'와 '표준화' 운동이 형성되는 배경이 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는 근대 산업생산에 의한 제품의 미적 형태를 인정하기 시작했으며, 1920년대 기능주의철학(진실성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 간결하고 기하학적인 형태를 강조하는 기계미학이 형성되었다.
1930년대 미국의 경재공항, 소비붐, 대량생산 신장 등의 요인에 의해서 '인더스트리얼 디자이너' 라는 직업이 활성화 되었는데 대량생산, 표준화, 합리화, 새로운 재료, 생산기술의 발달, 시각적인 요소와 판매촉진, 광고, 비주얼 이미지 등에 관계하는 디자이너가 요구됨은 물론 이러한 사업을 전문으로 하는 '디자인 비지니스'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디자인 작업은 자연히 팀에 의해서 협동하는 방향과 디자인하는 방법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 되었다.
디자이너가 보는 디자인은 개별적인 제품 하나하나의 형태일 수 있지만, 사용자 또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디자인이란 한 사람의 디자이너나 한 회사의 제품이 아닌 기능과 가격, 양식, 유형 등을 비교하여 각각 선택의 가능성을 부여할 수 있는 넓은 범위의 생활제품인 것이다. 따라서 매력적인 형태의 문제와 바림직한 기능의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딜레마로 남아있다.
한편 르네상스 이후 서양문명의 몇 가지 특성을 이루었던 과학주의, 예술 후원 계급의 상실 등으로 인해서 예술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문제로 취급되었다. 따라서 개인적인 성취의욕은 오늘날 미술로서의 공예에 대한 탐구를 증가시켜 공예와 디자인에 대한 갈등을 야기시켰고, 19세기 이후 모더니즘을 거부하는 포스터 모더니즘의 경향까지 디자인에 영향을 주고 있어 디자이너, 디자인 교육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에리코폰, 1956 모토로라 휴대폰, 1996
전화기받침과 수화기는 꼭 분리시켜야만 하는 걸까. 1백만 원이 넘는 돈도 아깝지 않았던, 모토로라의 고전
세련되고 기발한 최초의 일체형 통화기 '에리코폰'이 스타택 등장. 지금도 상당한 마니아를 거느리고 있는
출시되었을때 사람들은 전화를 걸거나 받는 순간 클래식한 디자인.
저절로 우아한 표정을 짓게 되었다.
볼펜 디자인, 1944 포스트 잇, 1974
취재중 만년필 잉크가 말라버려 인터뷰를 멈춰야 볼펜이 필기구의 혁명이라면, 포스트 잇은
했던 헝가리 출신 신문 기자의 고민에서 시작된 메모지의 혁명이다. 책중간 중간에 티나지 않게
필기구 볼펜이 대량생산되었다. 볼을 굴려 가며 표시를 해 두고 싶었던 과학자 아트 프라이가
잉크를 볼에 묻히고, 이 볼을 종이에 굴려서 글씨 개발을 성공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의 반응은
를 쓴다는 생각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심드렁했다.
애플 메킨토시 컴퓨터, 1984
칙칙한 회색이 아닌 투명한 흰색, 안정감 있는 디자인.
이름마저도 사랑스러운 애플 매킨토시의 탄생은 그야말로 IT기술력과 디자인의 혁명이었다.
'컴퓨터는 내 분신'이라는 애정을 갖게 만든 놀라운 디자인.
네빌 브로디 잡지, 1981
천재적 타이포그래픽 디자이너 네빌 브로디가 잡지 <더 페이스>를 통해 독툭한 시각언어들을 탄생시켰다.
그는 작품 하나하나가 그래픽디자이너들의 교과서가 될 만큼 막강한 영향을 행사하고 있다.
19세기 이후 서양 디자인은 탈장식 운동으로부터 비롯하여 조형적인 특성을 규명하고 그것의 미적 특성을 인정하는 시대를 거쳐 오늘날 디자인에 대한 방법을 연구하는 시대로 발전해왔다.
21세기의 오늘날의 디자인 상황은 여러 가지 관점에서 분석할 수 있겠지만 디자인 생성, 발전의 맥락에서 볼 때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자 한다.
1900년대 초에서 현대까지 60여 년간인 2020까지 그 발전의 정도에 있어서 차이는 있겠지만 동일한 원리에 따라 발전할 것이라고 가정할 때, 적어도 현재의 디자이너와 앞으로 다가올 세대의 디자이너까지도 산업화와 관련짓지 않고서는 디자인에 대해서 논의할 수 없을 것이며, 디자이너가 될 수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