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것처럼 컴퓨터 그래픽은 지난 몇 해 동안 엄청난 변신을 계속해 왔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컴퓨터의 힘을 빌려 창조작업의 능률을 향상시키려는 목적에서 시작된 이 첨단 분야는 놀랍게도 그 본래의 목적한 영역을 훨씬 벗어나 독자적인 분야로의 발전했으며, 그 중 일분야는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경이로움을 보여 주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 30년 전에 상륙한 바 있는 컴퓨터 그래픽이 선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그 영역을 여러 방면으로 넓혀가고 있으며, 특히 그중에서도 디자인, 방송미술, 영화, 과학 시뮬레이션, 광고미술 등에서의 효용도가 돋보이고 있다. 이들 여러 분야 중에서도 방송미술에 있어서의 CG의 위치는 대단히 중요한 다면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이유 중에서 하나를 들어보면 방송이라는 미디어의 문화적 포괄성에 있다고 할 수 있으며, 그래서 국내 CG의 출발이 방송의 적극성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방송미술의 CG가 지난 세월동안 그 연륜이나 장비의 첨단화에도 불구하고 디자인이라는 의미에서는 그다지 상응하는 발전을 이룬 것으로 생각되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개선의 여지가 있는 상황을 여러모로 관찰해 보았다.
CG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효용도를 고찰해 보는 것이 가방 빠를 것으로 생각된다. 즉, 어떤 일에 쓰이며 왜 사용되고 있는가하는 문제로부터 접근하는 것이 본질에 근접할 수 있는 지름길인것 같다.
알려진 바와 같이 컴퓨터에 의한 이미지의 창조는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크게 두가지의 본질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전자는 특히 상업성이 강조되는 광고나 방송 등에서 크게 대두되는 문제점인게 다르게 표현하자면 경비의 절감이라는 문제이다. 컴퓨터를 한번 구입하고 나면 여러 가지 문서나 자료에 소요되는 경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 본 바가 있을 것이다. 다른 표현을 써서 설명하자면 컴퓨터에 내장되어 있는 자료들은 수정이나 삭제 혹은 첨가 등의 작업이 매우 용이한 형태로 만들어져 있으므로 기존 서식류를 관리하거나 통제하는 것보다 속도면이나 기능면에서 월등한 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간단한 원리가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CG에 적응될 때는 그 가용범위가 놀라울 정도로 늘어나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국내의 CG는 여타의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2차원 CG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80년대 초반부터 보이기 시작한 CG에 의한 이미지들은실로 시청자들에게 대단히 신선한 감흥을 주며 다가오기 시작한 바 있다.
이후 방송계는 다투어 장비를 도입하는 경향을 보이게 되었고 이런 분위기가 올림픽을 전후한 시점까지 계속 이어지게 된다. 그 결과 국내 방송국의 장비는 세계 어느 곳에 내놀아도 뒤쳐지지 않을 수준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럴 즈음 장비의 문제나 기술의 문제가 아닌 장비를 사용하여 마지막으로 보여지는 작품의 디자인적 측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게 되었다.
방송 미술을 포함한 여타의 영상디자인 분야에도 일반적인 그래픽 디자인의 조형적 원리가 예외없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견을 제시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방송미술 분야에 있어서도 통일, 균제, 점증, 대칭 등으로 대변되는 디자인의 논리가 그 맥을 이루고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근래의 방송미술의 커다란 근간을 이루고 있는 CG분야의 경우 이러한 일련의 보편적인 논리들이 잘 활용되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는 다소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실지로 방송미술은 무대미술 등의 몇몇 분야를 제외하고는 대단히 시간에 쫓기는 작업인 것이 보통이다. 많은 디자인 원고가 길게는 며칠, 보도의 경우는 불과 몇 시간을 앞두고 제작자에게 전달되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다. 이런 다급한 상황하에서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은 재고할 필요도 없이 고도의 숙련성을 요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국내 방송사의 경우 대개 10여명 이상 가까운 디자이너들을 두고 일반프로그램으로부터 보도 프로그램까지 제작해 내고 있다.
C.I라고 통칭되는 기업이미지 통합정책에 대해 생소하다고 느낄 디자이너는 이제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이는 다시 설명할 필요도 없이 기업이 대외적인 이미지의 향상을 위하여 기업 자신의 느낌을 통합하는 작업으로써,그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통일성은 비단 그 프로그램자체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방송국전체의 이미지 통합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결국 국내 방송의 현실은 CG장비의 도입과 그 운용에 급급했던 나머지 CG-주로 2차원 -궁극의 목표인 디자인이라는 문제를 등한시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의 해결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안이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보다 먼저 시작한 선진국가들의 경우를 참조하여 국내 시청자들의 문화적 환경이나 디자인안목, 올바른 소구 방향들을 향상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