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디자인
산돌 커뮤니케이션
그래픽 디자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요소가 바로 타이포그래피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여타 그래픽 분야 중 가장 늦게, 근래에 와서야 타이포그래피의 꽃봉오리가 열렸다. 물론 이 분야애 대해 일찍 눈을 뜬, 깨인 디자이너들이 전혀 없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는 것이다. 그들의 땀으로 타이포그래피의 꽃이 피기 시작한 것이다. 앞으로 열릴 타이포그래시의 무한한 가능성, 특히 한글 서체의 역사와 그 활용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올해로 한글이 반포된 지 563돌을 맞았다.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배경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대단히 상반된 성격이 충돌하는 이중구조를 이루고 있다. 먼저 한글과 한자의 문제에서 순한글 사용주의와 한글 한자 병용주의가 곳곳에서 충돌하며, 활자체 제작 방법에서나 혹은 전산코드에서도 이른바 완성형 방식과 조합형 방식이 충돌했으며, 활자체 활용의 현장에서는 첨단의 혁신적인 표현 사례가 등장했는가 하면 한 편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활자체의 표현수치나 용어조차 통일되어 있지 못한, 초현대와 원시가 병존하는 괴이한 이중구조가 우리 타이포그래피의 배경을 이루고 있었다.
이처럼 이중구조의 방법론이 충돌했던 현상의 밑바닥에는 문화적 단절기를 만회하고자 하는 심리적 조급함이 깔려있다고 생각된다.
잘 알다시피 서양의 근대식 문화가 도입되고 한글의 중요성이 인식되기 시작하던 가장 중요한 시기에 우리는 일제 식민시대와 해방 후 6.25동란의 혼란기를 거치면서 우리의 활자산업 및 타이포그래피 방법은 전적으로 일본에 의존하게 되었고 여기서부터 우리 말, 글의 성격과 그 표현방법 사이에는 점차 거리가 생기게 된 것이다. 단절기 동안에도 이러한 괴리현상을 발견하고 이를 시정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 노력의 결과들이 가시화되기까지에는 전문인력층과 이를 뒷받침할 만한 독자적 산업구조가 극히 미미했다.
결과적으로 오랜 단절기를 보낸 후, 글자의 의미전달과 함께 시각요소로서 전달자의 감정과 정서를 전달하는 본격적인 한글 타이포그래피는 1970년대 후반에 시작되었으나 보수적 입장과 개혁적 입장의 이중구조가 맞물려 있었다.
타이포그래피 본연의 영역인 활자체의 운용과 표현 면에서 볼 때 서양 타이포그래피에는 명쾌함과 질서 위주의 방향 및 생동감과 역동성 방향의 대조적 두 방향이 있다. 명쾌함과 질서의 방향이란 전달 내용을 객관적 관점에서 보다 효율적으로 잔달학자 하는 의도에서 나타난 결과이며, 생동감과 역동성의 방향은 주관적 관점에서 자극적 표현으로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나온 결과이다.
1900년대 초반에 시작된 미래파와 다다이스트들 그리고 러시아 구성주의자들로 이어지는 서양의 모던 타이포그래피 운동과 1980년대 이후의 포스트모더니즘 경향은 대표적인 생동감, 역동성의 방향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데스틸과 바우하우스 운동 및 얀 치홀트 등에 의해 발전되어온 기하학적, 기능적 질서의 방법은 그리드 시스템을 활용하는 명쾌한 스위스 스타일 혹은 인터내셔널 스타일이라 불리는 질서정연한 방법으로 완성되었는데 이는 대표적인 명쾌함, 질서의 방향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970년대 후반에 창간된 주조활자 본문의 <뿌리깊은 나무>와 1980년대 초에 창간된 사진식자 본문의 <샘이깊은 물> 등 일련의 한국 브리태니커 사출판물에서 시도된 활자체의 운용과 표현은 이후 한글 타이포그래피에 있어서 명쾌함, 질서의 방향을 세우는 데 영향을 끼친 대표적 사례로 보인다. 또한 최근에 시도되는 여러가지의 실험적 타이포그래피 사례들 중에는 생동감, 역동성 방향의 극단적 경향도 보이고 있다.
우리에게는 다양한 활자를 끊임없이 개발하여 대중적으로 판매하는 폰트샵의 개념이 없었다. 활자시대로부터 서체 개발은 전통적으로 인쇄기기회사나 대형출판사, 신문사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왔을 뿐이다. 그러나 오늘날 달라진 것은 서체의 조형성과 기능성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폰트디자이너들이 생기고, 그들이 운영하는 사무실이 자리잡았으며 폰트샵으로서의 기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순수한 전문 폰트샵으로서 꼽을 수 있는 곳은 석금호씨의 산돌커뮤니케이션과 윤영기씨의 윤디자인 등이다. 윤디자인은 광고대행사에서 1년 남짓 근무하는 동안 한글 서체의 빈곤을 깨닫고 서체 개발에 관심을 갖게 된 윤영기씨가 1989년 12월 연구소를 열면서 시작되었다. 역시 초기에는 운영의 어려움으로 서체 개발 외에 일반 디자인 작업도 병행했던 윤디자인연구소는 '90년 윤체를 발표한 이후 좋은 반응과 함께 같은 해 대전 엑스포의 공식스폰체를 개발하기도 했다.
윤디자인의 독특한 점은 일반적으로 디자이너들이 본문체보다는 개성이 강하고 시각적으로 쉽게 차별화되는 제목용 서체 개발에 관심을 두는 대 비해 본문용 서체의 개발이나 기본 서체의 불편한 점을 해소하고 서체의 모양을 개선하는 데 역시 일정한 비중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돌체'로 유명한 석금호씨의 산돌커뮤니케이션은 1984년 산돌타이포그라픽스로 출발했다. 국내 최초로 디자이너가 기업과 계약에 의해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제목용 서체인 돌체를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석금호씨, 당시의 돌체는 손으로 직접 윈도를 그린 것인데, 계약 가격은 자당 7,000원으로 '84년과 '85년에 걸쳐 1,050자를 썼다고 한다.
그러나 애플 8비트로 시작된 컴퓨터와의 만남은 그의 서체 개발 이력에 전환점이 되었으며, 그후 IBM사의 오토캐드와 이지캐드 등을 거쳐 매킨토시 컴퓨터와의 만남은 그의 작업고 사업 방향에 획기적인 전환을 이루게 하였다. 매킨토시 쇼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업계에 알려진 산돌폰트는 여러 업체로부터 특수서체 개발 의뢰를 받는 등 전문 폰트샵으로서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사무실 운영을 위해 병행해오던 기타 디자인 작업은 그만두고 서체 디자인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서체 개발은 그 폰트가 어떤 성격을 갖느냐에 따라 소요되는 시간과 프로세스에 많은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서체는 그 쓰임새에 따라 분명한 성격을 갖도록 그에 맞는 방법을 찾아 능률적으로 제작해야 한다. 갈수록 디자인의 요구가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에 컴퓨터의 발전으로 인해 미래에는 개인적인 취향에 맞는 서체 디자인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