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의 환경보호정책은 무엇보다도 '인간 생존의 보장'이라는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다. 앞서 언급되었듯이 오랜 역사를 가진 환경보호라는 개념은 시민들과 정당의 공동적 관심사로 등장했기 때문에, 70년대에 들어서는 환경보호 차원에서의 많은 법규가 새롭게 제정되거나 기존의 것들을 더욱 보완한 국가적 차원에서의 환경보호가 적극 진행되었다. 연방환경청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연방정부가 해결해야 할 대기, 소음, 폐기물 및 수자원에 관한 문제의 심의와 조언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외에 일반 소비자 차원에서 참여가 가능한 환경보호단체들이 상당수 자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소비자고발센터와 유사한 성격의 '환경전화'가 그 예다. 이것은 연방환경청 관할의 공적 기구로 소음 . 폐수 . 폐기물 등 일반 시민들의 공해문제 제보를 받는다. 여기에 접수되는 환경보호 문제는 연간 약 6만여 건에 이른다고 한다. 이렇게 환경보호를 중요시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노출되어 있는 시민들은 너나할 것 없이 습관적으로 환경보호를 생활화한다. 그 예로는 80년대 초반부터 가정에서 식기 세척을 위한 세제를 사용하지 않거나 또한 그 양을 줄여서 사용하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의약품 역시 유효기간이 지난 것은 약국에서 별도로 접수하여 일괄적으로 폐기한다. 즉 몇개 되지 않는 약봉지라도 남은 약들을 일반 가정의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근처의 약국까지 직접 가지고 가서 반납한다. 또한 다 써버린 밧데리는 이것을 판매한 곳에 다시 만납하여 일반 쓰레기와 분리되도록 하고 있으며, 주부들은 간단하게 접어 핸드백 안에 지니고 다닐 수 있는 상용 쇼핑백을 가지고 다님으로써 비닐봉지의 남용을 줄이고 있다. 이외에도 장보기용 대바구니와 광주리를 사용하거나 비닐팩이 부착되어 있는 '장보는 밀차'를 이용하고 있다.
폐기물 재생은 70년대 중반부터 정부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일이다. 이에 따라 자원재생을 위한 폐기물 분리수거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실시되어 폐지의 60%, 유리의 40%를 재생하여 사용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전체 폐기 처리량의 30%를 절감하게 되었다.
이렇게 독일인들이 환경보호를 생활화하게 된 가장 큰 요인은 무엇보다도 환경에 관한 교육방침에 있다. 77년 유네스코의 주창 아래 초등학교와 중등학교에 환경에 관한 교과목이 신설된 후, 독일에서는 80년대 초부터 환경보호 교과목을 공식 과목으로 지정했다.
환경 수업의 근본적 취지는 첫째 학생들로 하여금 그들이 거주하고 있는 공간에서 경험할 수 있는 환경 문제를 찾아내도록 하고, 둘째 이를 통해 얻어낸 지식을 보다 넓은 차원으로 전이시키도록 하고, 셋째 서로 다른 관심, 즉 경제학적 그리고 생태학적 관심을 서로 비교하여, 넷째 이를 통해 생태학적 환경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한 후, 다섯째 능동적인 참여의식과 공동 책임의식을 일깨우게 하는 데 있다. 이러한 내용은 주로 생물 . 과학 . 지리 수업과 병행하여 진행되고 있다.
이렇게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진행된 환경교육은 일시적으로 환경문제를 검토 . 체험하는 형태의 교육이 아니라 문제의 발굴에서부터 분석, 논리적 전개, 결론 형식으로 진행되어 학교 교육에서부터 환경에 대한 철저한 체험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독일에서 생산되는 제품 역시 환경에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설계되고 있으며, 재생 가능한 재질들이 제품 제작의 주요 소재로 선택되고 있다. 독일의 디자인은 바우하우스와 울름조형대학의 디자인 철학을 기본으로 하고 있어, 제품디자인 역시 합리적이로 도덕적이며 기능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이것은 곧 자원 고갈의 문제와 생태계 파괴 방지에 관계되는 원칙과 깊게 관련한다. 즉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정신은 수명이 긴 제품의 생산으로 연결되어 자원 고갈과 폐기물의 양을 줄임으로써 생태계 파괴문제도 줄여갈 수 있다. 이러한 정신은 일본의 얄팍한 상술인 다량다종의 제품 생산에도 불구하고 지속되고 있다.
독일의 자동차산업의 경우 제품 수명이 길다는 장점을 세계 시장에 과시해왔다. 또한 적은 에너지로 같은 효과 또는 보다 나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자동차나 무공해 에너지 자동차 개발에 앞장서고 있으며, 핵에너지의 사용 억제를 장기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세탁기 역시 10년, 20년 이상을 사용하더라도 그 기능상태가 그대로 유지되도록 생산된다. 독일산 세탁기는 드럼이 수평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물이 3/1만 채워져도 세탁이 가능하다. 80년대 초반에 등장한 밀레 세탁기는 빨래의 양에 따라 전기 . 물 . 가루비누의 절약 프로그램을 첨가하여 환경보호의 입장에서 개발한 것이다.
이외에도 독일의 가구회사들은 80년대 초에 '혁신과 생태학'이라는 경영정책 아래 생산한 사무용 의자를 들 수 있다. 이 의자들은 당시에 국제 산업계에서 '미래의 생태학적 의자'로 각광을 받았는데, 재료의 100%가 재생 가능하여 환경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개발되었다.
이렇게 기업에서 실시하는 제품 생산 외에도 디자이너가 개인적으로 혹은 그룹 차원에서 환경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를 종종 볼 수 있다. 베를린에 위치한 국제디자인센터에서는 매년 디자인 공모전을 주최하는데, 74년의 공모전 슬로건은 '제품과 환경'이었다.
여기에 참가한 디자이너 그룹 중 오펜바흐 조형대학의 강사와 6명의 학생들로 이루어진 '디자인 창의' 그룹은 환경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재질이나 재활용품을 이용한 새로운 디자인 이론 제시로 이 공모전에서 수상했다.
그들은 디자인 과정에 있어서 혁신적 사고뿐 아니라 사물에 대한 새로운 감각도 가져애 한다고 주장했다. 즉 에너지와 자원 고갈의 심각성에 대응하기 위한 '보완된 기능주의' 또는 '감각적 기능 이론' 등의 논리를 네세웠다. 그들이 작품으로 제시했던 것은 폐품을 이용한 새로운 조형 작품이었다. 즉 낡은 옵셋 인쇄용 양철판과 빈 깡통으로 전기램프의 갓을 만들었으며, 75년에는 낡은 자동차 바퀴로 소파를 제작했다.
이처럼 산업의 발달과 물질팽배주의 또는 소비의 미덕이 이루어놓은 지구환경의 오염문제는 이제 개인으로부터 협회와 연합 형태에 이르기까지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져 기업의 정부의 정책으로까지 파급되고 있다.
독일 환경보호 측면에서의 디자인 활동을 통해 우리는 디자인 개입이 컨셉트 단계에서부터 이루어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즉 환경보호 문제는 정확한 분석과 논리적으로 확고한 판단이 선 후에야 비로소 조형적 설계가 시작되기 때문에, 디자이너는 항상 이러한 과정들을 충분히 알고 디자인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디자이너는 이제 형식적으로 환경문제에 대한 분위기 조성을 하는 역할을 떠나 진지한 결과물들을 내놓고 있다.
"마지막 나무가 개간되고, 마지막 강이 오염되고,
또 마지막 물고기가 낚여졌을 때에야 비로소 너희들은
사람이 '돈'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인디언 명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