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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WEB] - 2년 차 콘텐츠 에이전시 대표의 이유 있는 ‘남 탓’
디자인스푼  |  2012.09.19 19:47:09

2년 차 콘텐츠 에이전시 대표의 이유 있는 ‘남 탓’


이별은 대부분 당하는 자에게 속수무책이다. 비즈니스적 이별은 더하다. 쿨하고 의연하게 상황을 즐기거나, 부당한 이별의 가능성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2년 차 콘텐츠 에이전시의 경험과 사례로 풀어본 이별 가능성 줄이기.

생각하는 손 더파베르


대행사 선정 연기가 남긴 ‘비즈니스 트라우마’

트라우마의 그림자를 처음 드리운 건 A사였다. A사는 자사 예약시스템과 웹사이트 개편을 준비 중이었고, 우리는 창업 전에 몸담았던 회사 대표의 요청으로 함께 제안에 참여하기로 했다. 오리엔테이션은 유쾌했다. 우리는 몇 년 전 경쟁업체 웹사이트를 구축하고 운영해 본 경험이 있어서 프로젝트를 빨리 이해했다. 클라이언트의 웹 이해 수준도 높았고 요구 사항도 명확했다.

그런데 제안설명회 당일 분위기가 이상했다. 갑작스러운 조직 개편으로 담당자는 불참했고 참석하기로 했던 의사결정권자(상무급 책임자)는 공석이었다. 대신 계약직 운영 담당자들이 자리를 채웠다. 우리 다음 순서였던 다른 제안사는 제안 당일 갑자기 펑크를 내고 오지 않았다. 그래도 제안설명 후 실무자들의 질문과 명함 교환이 이어지는 등 반응이 좋아 내심 기대했다.

그러나 1주, 2주, 결과 발표는 계속 미뤄졌고 한 달 쯤 지났을 때 대행사 선정이 무기한 연기됐단 연락이 왔다. 이유도 없이…. 무려 2주 동안 10명 남짓한 인력이 투입한 제안 준비는 그렇게 허망하게 날아가 버렸다. 우리에게 수고비를 내야 했던 회사는 적지 않은 현금 손실을 보기까지 했다. 워낙 대형 프로젝트였던 탓에 다른 작은 기회를 포기하면서 준비했던 것을 고려하면 그 손실은 제 3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이를 누가 보상할 것인가?


이별 가능성 줄이기 하나, 공식적인 프로세스를 타라!

그로부터 몇 달 후 우리는 B사의 SNS 개편 프로젝트 제안에 참여했다. 참여 업체 중 가장 높은 제안점수를 기록했지만 ‘업체 등록’에 실패해 의기소침해 있던 터였다(대기업 구매 시스템은 어이없게도 창업 1년이 안 된 신생 업체에 전년도 대차대조표를 요구한다. 창의적인 신생 전문가 그룹들이 편법이 아니고는 계약 자체를 할 수 없게 만든 시스템에 관한 문제 제기는 다음으로 미루자).
제안 발표가 채 나기도 전에 같은 회사의 다른 사업부 담당자에게 연락이 왔다. PT 때 평가위원으로 참석한 사람이었다.

‘당신네 아이디어가 정말 좋았다. 곧 우리 부서에서 신제품을 출시하는데 연간 SNS 마케팅을 맡기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것을 전화위복이라고 하는 것인가! 상사를 설득하기 위한 제안서를 준비해달라고 했다. 동업자 전원이 며칠 밤낮을 매달려 이전 제안보다 더 다채롭고 말랑말랑한 내용을 꾸렸다. 한 번 더 버전업해달라고 했다. ‘그럴 수 있지.’ 성실하게 응했다. 다시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과 조금 다르니 이런저런 점을 고쳐달라고 했다. 고쳐주긴 했으나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디어를 ‘창작’해 가면 클라이언트가 입으로 ‘각색’하고, 그러면 우리가 그 말을 받아 ‘창작물’을 고친 후 ‘생각하신 게 이게 맞나요?’하고 가져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제안사가 아니라 내부에서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서너 번의 제안서 갱신 후 일부러 연락하지 않아 봤다. 그쪽에서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게 두 번째 이별이었다. 당시에도 만난 이는 담당자 2명이 전부였다.
이때 배운 점이 ‘무조건 공식적인 프로세스 타야 한다’는 점이다. 누군가 우리를 특별히 봐주고 있다? 그런 거 없다. 아이디어와 결과물에 자신 있다면 승부를 겨뤄야 한다. 공식적으로!


이별 가능성 줄이기 둘, 아는 사람을 믿지 마라!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인맥’이 중요한 사회다. ‘공식적인 프로세스가 아니면 절대로 일을 시작하지 않겠다’던 다짐도 ‘아는 사람의 부탁’ 앞에서 쉽게 허물어져 버렸다. ‘아는 사람네 회사’는 C사의 온라인 매거진 창간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같은 일을 해본 적이 없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아는 사람네 회사는 C사와 어떤 계약도 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실 매거진 창간 대행은 일보다 큰돈 버는 일은 아니라서 ‘아는 사람’에게도 그리 매력적이진 않은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그 사람은 C사와의 관계를 좋은 방향으로 키워가고 있었기 때문에 일을 거절해 관계를 껄끄럽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마침 C사 담당자가 아는 사람과 전 직장 동료였던 탓에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한 다리 건너인 우리는 문제 제기를 했다. 하지만 C사 담당자는 ‘내부 절차상 늦어지는 것일 뿐, C사는 그런 회사가 아니다’며 선을 그었다. 아는 사람의 입장도 있어서 그 문제를 잡고 늘어질 수는 없었다.

3개월 후 지지부진한 진행, 계약 없이 반복되는 ‘버전업’ 요구, 불확실한 프로젝트 예산 등 우려했던 모든 상황이 이어지고 우리는 이별을 준비했다. 구체적인 예산 규모를 물었을 때 C사 담당자는 우리가 생각한 금액의 50%를 제시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영상제작, 사진촬영, 스튜디오 임대, 섭외비 등 실비로 써야 하는 딱 그만큼의 돈이었다. 우리는 손을 뗐다. 아는 사람에게 받기로 한 돈도 포기했다. 콘셉트, 전략, 아이템 기획, 전체 페이지 화면설계, 콘텐츠 샘플 제작 등 실 제작 이전의 모든 과정을 진행하고도 깔끔하게 포기했다. 불공정하고 부당한 상황은 인력과 시간, 비용의 낭비로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7개월이 지난 지금 그 매거진은 아직 발행되지 못했고, 프로젝트를 중단한 아는 사람은 C사와의 비용 지급 협상을 계속하고 있다.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는 것은 그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다. ‘인지상정’과 ‘연민’이라는 우리 특유의 정서를 이기기 어려우니 문제다. 사람을 잃을 것인가? 프로젝트를 잃을 것인가? 특히, 전자는 쉽지 않다.






이별 가능성 줄이기 셋, 도장은 찍고 보자!

드디어 D사를 만났다. 다짐했다. ‘다시는 속지 말아야지. RFP도 받고 최소한 팀장급이 배석한 자리에서 경쟁 PT도 해야지. 견적 협상도 하고 계약서도 쓰고 모든 단계를 차근차근 밟고 나서 일해야지’.

그 모든 것이 기우였다는 듯 D사와의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RFP가 왔고 PT를 했고 좋은 반응을 얻어 견적협상을 빠르게 마무리하고 계약서 초안을 보냈다. 모든 게 ‘빠름, 빠름’이었다. 계약서에 서명하진 않았지만 이쯤 되면 ‘계약서 서명 후 일을 하겠다’고 성깔을 부려 일을 망칠 필요는 없었다. 우리는 열심히 일했다. 문제점을 열심히 파악했고 수많은 사이트를 분석했으며 아이디어도 다양하게 도출했다. 세 명의 디자이너가 투입돼 다양한 디자인을 고민한 끝에 만족스러운 ‘시안'도 만들어냈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계약서도 실무자의 검토와 수정, 법무팀의 검토와 수정이 마무리돼 이제 도장만 찍으면 됐다. 가슴을 졸이며 기다리던 우리도 마음이 놓였다. 날인된 계약서가 돌아오기만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담당자가 자리를 비운 이틀 사이에 임원급 인사발령이 났다. 신임 상무가 왔고 모든 계약 체결과 비용 지급을 ‘일시 중단’하라는 명이 하달됐다.

담당 팀장은 ‘회사의 결정이라 어쩔 수 없다. 2~3개월 기다려 주면 프로젝트를 재개하겠다. 혹 재개하지 못하더라도 진행한 부분에 해당하는 비용을 지급하겠다고 했다’며 미안해했다. 그리고 3개월이 흘렀다. 아무 말이 없었고 우리는 하고 싶지 않던 독촉 메일과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내부 검토 중이라는 말에 희망을 품고 우리는 기다리는 중이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무조건 도장을 찍어라, 도장 찍기 전엔 일하지 마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지금 그렇게 요구할 수 없다면 우선 전문가가 되라고 권하고 싶다. ‘우리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야 일을 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전문가다.
사업을 시작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조언한다. ‘무조건 하겠다고 해라’, ‘가리지 마라’,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라’ 등. 그런 태도로 일하면 불명확, 불공정, 부정, 부당의 상황에 놓이기 쉽다. 자신도 모르게, 파트너와 동등하지 않은 관계를 스스로 만들게 될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난 이별을 아쉬워하지 않는 이유다.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택할 ‘비즈니스적 이별’에 관해서 생각해 봐야 한다. 어떤 일, 어떤 상대, 어떤 상황이라면 스스로 이별을 고할 것인가!

편집자 주. ‘생각하는 손. <더파베르>’는 브랜딩과 마케팅 분야에서 콘텐츠와 커뮤니케이션 기획을 전문으로 하는 아이디어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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