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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IM] - 2012년 여름, 스페인 광고의 단상
디자인스푼  |  2012.09.19 20:17:55

2012년 여름, 스페인 광고의 단상


SNS는 오래전 같이 일했던 직장 동료, 대학 졸업하고 소식이 끊겼던 동창과 연결 등 잠시 잊었던 사람들과 다시 인연의 끈을 이어주는 기특한 일을 하곤 한다. 그렇게 새로운 인연의 끈이 이어져 서로 안부를 묻게 되면 먼저 듣는 말은 “거긴 좀 어때? 스페인 경제가 정말 안 좋다는데, 얼마나 힘들겠어”란 근심 어린 위로의 말이다. 맞다. 스페인은 지금 참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

스페인 경제 상황이 심각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의 얼굴에서 좌절과 불안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자살, 가족 해체 같은 뉴스도 듣지 못했다. 공항과 터미널은 여전히 사람으로 붐비고 거리를 활보하는 이들의 표정은 밝다.


단상 1 - 경제 위기

현재 스페인 경제는 바닥을 모를 나락에 떨어졌다. 아직 전면적인 구제금융을 신청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가 1998년에 겪었던 IMF 구제금융에 못지 않은 심각한 상황이다. 국채 금리는 최고 기록을 연달아 돌파하고 실업률은 25%, 청년 실업률은 50%를 넘어섰다. 개인과 기업뿐 아니라 정부도 지갑이 바닥났고, 외부 도움 없이는 상황을 타개할만한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 한쪽에선 아직 신청하지도 않은 구제금융 신청이 결국 시간 문제일 뿐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최근에는 부가세 부과 품목 기준이 바뀌고 기본 부가세도 인상돼 높지 않은 소득 수준에도 세부담은 유럽 내 최고 수준이다. 국민이 부담할 비용은 늘면서 정부의 재정 지출을 통한 경기 부양책은 줄어 경기 침체의 악순환을 되풀이 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들의 닫힌 지갑과 마음을 열기 위한 브랜드 간 경쟁은 눈물겨울 정도다. 부가가치세 인상의 충격을 상쇄할만한 파격적인 할인(25% 할인, 할부 이자 우대)과 한정 판매라는 유인책으로 서두르라고 말하는 포드(Ford) 같은 브랜드가 있는가 하면, B급 문화 같은 독특한 커뮤니케이션으로 메시지를 강화하고 소비자 시선을 잡는 비전랩(Visionlab) 같은 브랜드도 있다.

비전랩의 캠페인인 ‘Visionlab Gratuito’를 보자. Gratuito는 ‘무료’라는 뜻이다. 로보트 태권V가 어디선가 나올 것 같은 들판, 독특한 느낌의 남녀가 강아지 인형 머리를 쓰다듬다가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멀리서 투명한 유리 안경알이 떠오르고 무료라는 글자가 네온 사인처럼 반짝인다. 안경 세트를 맞추면 렌즈 한 벌을 무료로 준다는 메시지로, 카피에서는 노골적으로 ‘무료 안경 렌즈를 주기 때문에 이런 식의 싸구려 광고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무료라는 메시지를 강화하면서 B급 문화적인 코드로 전해 흔한 할인, 보너스 메시지 가운데서도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았다. 이렇게 구체적인 할인으로 불황을 타개하는 브랜드가 있는가 하면 그동안 쌓은 저가격 고품질의 이미지와 소비자들과의 신뢰 관계를 이용해 풀 죽은 스페인 국민 사기를 올리고 매출도 올리려는 아이키아(Ikea) 같은 영리한 브랜드도 있다.

온통 회색빛 도시. 경기 침체에 빠진 스페인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남자의 얼굴에는 지난 밤의 고단함과 다시 시작하는 긴 하루에 대한 막막함이 보인다. 이런 암울한 분위기에 ‘한 번 시도해보세요’라는 카피와 함께 어질러진 서재를 들어 엎는 여자가 등장한다. ‘우울한 회색 빛에 맞서세요. 실수에, 변화에 도전합시다’라는 카피와 함께 작지만 분명한 반전이 시작한다. 어둡고 낡은 블라인드를 걷고, 생기와 활력을 상징하는 물건들이 등장한다. 한 여자가 붉은 립스틱을 바르며 ‘작은 것이 작은 게 아닐 수도 있다’ 란 카피가 나오고 여자는 미소를 띠며 집을 나선다. 이어지는 ‘변화는 집에서 시작됩니다’란 카피. 스페인을 짓누르는 불황의 기운을 걷고 스페인 국민을 응원하면서, 매출 확대라는 꿩과 알을 함께 노리는 캠페인이다.

소비자의 답답한 마음을 풀어주는 재미있는 광고도 있다. 올 여름 10대들을 거리에서 흥얼거리게 한 환타 캠페인이다. 환타는 형제 브랜드인 코크와 충돌을 피하기 위해 핵심 타깃 연령대를 코크보다 낮은 10대로 설정했다. 오렌지나 레몬 주스를 좋아하는 스페인에서 과즙이 들어간 환타의 이미지는 콜라보다는 덜 해로운 음료로 인식돼 학부모와 10대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A tomar Fanta’는 10대들이 느끼는 자질구레하지만 나름 심각한 애환을 속 시원하게 푼다. 나이트클럽 입장을 퇴짜 맞는 10대들, 신나게 파티하는 데 내려와서 잔소리를 하는 이웃 아주머니, 자기를 순수한 친구 이상으로는 보지 않는 얄미운 여자친구에 낙담하는 소년, 치아교정기 때문에 데이트도 할 수 없는 소년의 마음, 나이트클럽에서 멋진 여자를 발견하고 기뻐했다가 조명이 들어왔을 때의 황당함 등 난감하고 짜증스러운 순간에 합창단으로 대변되는 환타는 ‘Fanta를 마시세요’ 혹은 ‘Fanta나 (쳐)드세요’라고 말한다. 10대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와 쉬운 멜로디로 환타는 올 여름 스페인 10대들이 자기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광고가 됐다.




단상 2 - 런던올림픽

런던올림픽이 가까워지면서 ‘스페인도 올림픽으로 들썩들썩 하겠구나’란 생각을 했지만 일부 채널에서 중계 방송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올림픽 열기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 국민이 잠을 잊으면서 새벽까지 선수들을 응원하는 것과는 온도차가 현격하다. 스페인은 요트나 남자 핸드볼에서 메달을 기대하기는 하지만, 우리처럼 ‘10-10’ 같은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온 국민이 일치단결해 잠을 설치며 메달을 향해 달리지는 않는다. 자연스럽게 올림픽을 활용한 마케팅 활동도 그리 활발하지 않다. 그저 올림픽 후원사임을 강조하는 캠페인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이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P&G의 ‘Gracias Mama’ 캠페인과 공식 후원사가 아님에도 ‘London’이라는 지명과 ‘위대함에 대한 도전’이라는 올림픽 핵심 속성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나이키의 글로벌 캠페인 ‘Find Your Greatness’이다.

P&G의 ‘Gracias mama’ 캠페인은 P&G가 올림픽을 계기로 전 세계에서 펼치는 캠페인의 스페인 버전으로, 이 캠페인은 놀라운 투지와 열정으로 올림픽을 장식하는 선수들 뒤에는 선수들의 투지와 열정을 길러 준 엄마들이 있었다는 점을 상기한다. 우리나라도 이용대 선수 어머니가 전 세계에서 온 100여 명의 어머니들과 함께 이 캠페인의 후원으로 올림픽을 방문해 자랑스러운 아들의 활약상을 직접 볼 수 있었다.
나이키의 글로벌 캠페인은 다양한 사람들의 여러 스포츠에 대한 열정을 담아 이번 올림픽 개최도시 ‘런던’이라는 지명을 거리명, 운동장 이름 등에 절묘하게 연결했다. 보통 사람들이 경험하는 도전과 이 도전에 당당하게 맞서는 작은 위대함을 발견하라는 의미다. 마지막 장면에서 높은 다이빙 점프대에서 두려움으로 머뭇거리다 뛰어내리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가 스포츠에서 발견할 수 있는 도전과 두려움, 그리고 결단을 잘 표현한다.





단상 3 - Vacation

스페인 국민에게 현재 중요한 화두는 여름 휴가다. 평소 인생을 즐기는 데 많은 비중을 두고 느긋하게 사는 모습을 보긴 했어도, 현재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상당히 놀랍다. 이런 사실은 잠시만 TV를 봐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많은 광고가 휴가의 여유, 여름의 낭만을 얘기한다. 지난 여름에도 언급했지만, 여름 휴가철이 되면 에스트렐라 담(Estrella Damm)의 낭만적인 광고를 빠뜨릴 수 없다. 올해도 마요르카를 배경으로 고향으로 돌아온 청년의 여름이야기를 한 여름 밤의 꿈처럼 아름답게 풀었다.

아쿠아리스는 코카콜라의 스포츠 음료 브랜드다. 일본에서 포카리 스웨트에 대응하려고 출시한 제품으로 형제 브랜드인 파워에이드가 전문 스포츠 드링크 시장에서 게토레이와 경쟁하는 사이, 좀 더 대중적이고 마시기 쉬운 스포츠 드링크 시장을 노리고 있다. 형제 브랜드와 구분하기 위해서 아쿠아리스는 10년 전에 ‘Life is a tough sport’라는 콘셉트를 도출하고 꾸준히 대중적인 스포츠 드링크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올 여름 스페인에서 선보이는 캠페인도 그동안의 포지셔닝과 여름 휴가, 경기 침체에 따른 소비자들의 얇은 지갑 사정, 많은 고령 노인 인구 등 다양한 요인을 치밀하게 고려했다.

스페인의 휴가는 우리나라보다 길지만 소박하다. 경치 좋은 곳에서 푹 쉬고 충전하는 게 스페인 국민이 꿈꾸는 이상적인 휴가다. 휴가 사이에 빡빡한 일정을 잡기보다 넉넉한 시간, 사람들과 유쾌한 대화, 맛있는 음식으로 채우고자 애쓴다. 도시인들은 휴가철을 맞아 가족과 친척집을 방문해 고향의 정을 나눈다. 이런 현상을 푸에블로(Pueblo)라고 한다. 최근 경기 침체와 고령화에 따라 작은 마을은 관광객도 줄고 시골의 노인들은 외로운 시간을 보낸다. 또 돌아갈 고향이 없는 도시인들도 고향을 찾아 떠나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처량함을 느낀다. 아쿠아리스 캠페인은 이런 외로운 사람들을 대변하고 있다.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적적한 시골 마을의 어른들이 등장하고, 도시인들을 새가 물어다가 시골 마을에 주면 낯선 사람들이 만나서 서로 마음을 공유하고 지혜를 나눈다. 외로운 도시 사람들과 적적한 시골 마을의 노인들을 연결함으로써 외로움을 달래고, 노인들이 살면서 깨우친 지혜들을 전하는 것이 캠페인의 목적이다. 소비자들의 고단함을 아쿠아리스는 함께 나누고자 한다. 왜? 삶이란 만만치 않은 스포츠니까. 전국에 걸친 작은 마을(2,500명 이하가 거주하는)들이 자신들의 마을 정보와 도시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을 기록하고, 푸에블로에 참가할 사람들이 신청서를 작성하면 이들은 서로 결연돼 해당 마을을 방문할 수 있다. 새 둥지처럼 디자인한 웹사이트에는 2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작은 마을 방문을 위해 ‘입양’을 기다리고 9천 개 이상의 마을이 젊은 도시인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고향에서 돌아올 때 추수한 것들을 바리바리 싸주고도 마을 어귀까지 나와 계속 손을 흔드는 우리네 고향 마을의 어르신들을 떠올리게 하는 캠페인이다.





이 밖에도 여름 휴가를 위해 준비할 것은 바로 몸매 관리와 다이어트다. 요즘은 남녀를 불문하고 다이어트가 공통 관심사지만 비키니를 입고 싶어하는 여성에게는 더욱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마음먹어보지만 시간도, 돈도 없고 무엇보다 ‘의지부족’으로 자신 있게 비키니를 입기는 여간 쉽지만은 않다. 당당히 비키니를 입기 위해서는 굳건한 의지와 확실한 동기가 필요하다.

누가 이런 강한 동기를 만들어 줄 수 있을까? 니베아의 Q10 Body Performance Line은 이런 강한 동기를 같은 여성이 아닌 ‘잘 생긴 라틴 남자에 대한 열망’이 만들어 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근사한 라틴 남자들의 본능적인 자극과 실제적인 몸매 관리를 위해 조언한다면, 삼일 만에 다이어트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고 어쩌면 본인도 놀랄만한 결과도 가능하지 않을까? “당신은 당신의 피부를 위해서 모든 것을 하고 계신가요?”라고 묻는 이 광고는 각 버전에서 탄력 있는 몸매와 아름다운 피부를 갖기 위한 조언을 한 가지씩 제시한다. ‘과자를 멀리하고 야채와 과일을 대신 먹으라’, ‘틈이 나는 대로 몸을 움직이기 위해서 계단을 많이 이용해라’, ‘여름에는 특히 몸에 좋은 음료수를 많이 마셔라’, ‘집안 일을 하는 것을 운동하는 기회로 삼아라’ 등이다. 이미 다 들어봐서 아는 내용이지만, 진한 향기가 나는 라틴 남자들이 똑바로 눈뜨고 얘기한다면 다른 효과를 볼 수 있을 듯도 하다.
니베아는 단순히 조언 제공을 넘어 웹사이트에 접속해 신청할 경우 2주 개인별 다이어트 및 운동 프로그램을 설계함으로써 Q10 Body Performance Line의 메시지를 강화하고 있다.

2012년 여름, 끝을 알기 어려운 경기 침체 속에서도 마땅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이 스페인을 뒤덮고 있지만, 스페인 국민은 삶에 대한 낙관을 잃지 않는다. 서로 나누고 격려하면서 어려움을 묵묵히 헤쳐나가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무언가를 서둘러 해치우는 강단과 추진력은 보기 어렵지만, 천천히 지치지 않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위기에 대처하는 또 다른 방법이 아닐 수 없다. 요즘 온도는 40도가 넘지만 저녁에 부는 서늘한 바람은 여름이 그리 길지 않음을 깨닫게 한다. 이 여름이 저물며 스페인의 위기도 함께 사그라지기를 바란다.




장인주
이노션 월드와이드 스페인 법인장 ijchang@innocean.com
금강기획 등을 거쳐 이노션 월드와이드 해외광고팀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이노션 스페인 법인을 책임지고 있다. 이노션의 전략과 크리에이티브 역량을 확보해 현대·기아자동차가 스페인 일류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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